작성자
PINDMNK
작성일
2022-07-21 18:15
조회
303
「통일발걸음, 3일차」 6·25전쟁 동부전선, 전투전적비를 찾아갑니다
「통일발걸음, 3일차」 6·25전쟁 동부전선, 전투전적비를 찾아갑니다
◇ 오늘은 6·25전쟁 당시 전투전적비를 찾아가 낡은 태극기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전투전적비 주변의 잡초를 참가대원들이 뽑는다. 또한 전투전적비에 얽힌 6·25전쟁 역사와 사연들을 차동길 총괄단장님으로부터 들으며 조국을 지키기 위해 이곳 고지에서 쓰러진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순례와 같은 의미있는 행군길이 되었네요.

전쟁에 대해 잘 몰랐던 우리들이 통일발걸음을 통해 많은 것을 직접 보고 겪으면서 그동안 무심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필리핀군 전투전적비, 어떤 곳일까요?

(행군일정) 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 →
백석산지구 전투전적비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 → 필리핀군 전투전적비
◇ 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 이 전투에서 아군은 적 사살 2799명, 포로 557명의 전과를 올린 반면 428명이 전사하고 1062명이 부상당해 당시 미국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할 만큼 빛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지역 전투의 승리와 산화한 넋을 기리기 위해 1958년 3월 15일, 육군 3군단이 건립한 펀치볼 지구 전투전적비는 눈에 띄는 이정표도 없이 국도변 좁은 계단 위에 있어 일부러 찾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기 십상이다.

통일발걸음 참가대원들은 전투전적비까지 가기 위해 가파른 긴 계단을 올라가야했다.
이곳에 게양되어 있는 낡은 태극기를 교체하고 전적비 주변의 잡초를 정성스럽게 뽑았다.



◇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 : 6·25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진 1951년 8월 18일에서 9월 5일까지 미 2사단 및 배속된 국군 5사단 36연대, 국군 7사단 대전차 공격대대가 강원도 양구군 983고지, 940고지, 773고지 능선군에서 북한군 5군단 예하 12사단과 치른 고지전으로, 격전 중에 생겨난 무수한 사상자들이 쏟은 피들이 능선을 시뻘겋게 물들이자 종군기자들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2사단이 독일군과 맞서 싸워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던 지역인 피의 능선(Bloody Ridge)의 이름을 따 이 곳 역시 피의 능선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곳을 찾았다.


미리 준비해 온 태극기로 낡은 태극기를 교체하는 의식을 마치고 차동길 총괄단장님께 당시 전투에 얽힌 사연을 들었다.
태극기를 게양하고 또 바라보는 순간 온 몸에 느껴지는 진한 감동, 우리는 새로 게양된 태극기를 바로보며 또 하늘을 쳐다본다.
◇ 백석산지구 전투전적비 : 백석산 전투는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송현리 백석산에서 1951년 8월 18일부터 10월 28일까지 국군과 미군 연합, 북한군과 중공군 연합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백석산 전투는 두 달간 적군사살 1,460명, 포로 101명, 국군 전사 244명, 부상 1,165명, 실종 14명에 이르는 사상자를 낸 치열한 전투였다. 10월 25일에 재개된 휴전협정으로 전투가 종료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지켜낸 백석산 북쪽으로 군사분계선이 북상하게 되었다.


◇ 도솔산지구 전투위령비 :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 위치한 도솔산 전투지는 6.25 전쟁 당시 최대 격전 중의 하나였던 ‘도솔산 전투’가 벌어진 장소이다. 1951년 6월 4일부터 19일까지 보름에 걸쳐 펼쳐진 도솔산 전투는 6.25 전쟁 기간 중 최대 격전지였을 뿐만 아니라 해병대 5대 작전의 하나로 기록될 만큼 중요한 의의를 가진 전투이다. 국군 해병대는 123명 전사, 4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으며 북한군은 약 3,000명이 사망하고 44명의 포로가 발생하였다.


6·25전쟁 당시 적이 난공불락을 호언장담하던 이 도솔산지구는 해병대가 산악전투 공방전으로 무려 3,263명의 적을 사살하며 해병대 전통의 찬란한 금자탑을 이룬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해병대의 용맹에 감탄하여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무적해병’이라는 호칭을 얻게되었다.
◇ 필리핀군 전투전적비 : 철원-평강-김화를 잇는 철의 삼각지대에서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1952년 05.18 ~ 21일과 1952.06.18. ~ 21일 두 차례에 걸쳐 중공군과 의용군을 필리핀군 제 19, 20 전투단이 힘껏 싸웠다. 제 1차 전투 3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9차례나 바뀔 정도로 치열하였다.

6·25전쟁 참전용사셨던 할아버지의 앨범을 들고 한국을 찾아온 로빈손과 그 친구들이 참석해서 두 나라의 국기와 국가를 모두 같이 불렀다.
글씨도 다 지워진 비석 옆에 수북한 잡초도 같이 뽑았다.



전체 0개